[이학영 칼럼] 자멸의 길 가는 괴물, 민노총

입력 2022-07-05 17:24   수정 2022-07-06 00:10

최저임금제도가 정말 ‘노동약자를 보호하는 장치’인가. 역사를 짚어보면 얘기가 복잡해진다. 최저임금제도는 미국이 1938년 도입하면서 탄생했다. 노동자 임금을 시간당 25센트 이상 지급해야 한다는 ‘공정노동기준법’을 제정하면서다. 그런데 이 법안을 놓고 남부와 북부지방이 맞섰다. 가격 경쟁에서 밀리던 북부 주(州)들이 도입을 주장했고, 남부 주들은 반대했다. 대립의 한복판에 남부 농장에서 노예 해방된 흑인 노동자들이 있었다. 남부지방 기업들이 이들의 노동력을 값싸게 활용해 가격 경쟁력을 누린다는 게 북부 기업들의 불만이었다.

그렇게 해서 도입된 최저임금제도가 흑인 노동자의 삶에 햇살을 비춰줬을까. 그 반대였다. 1930년대 후반은 대공황이 절정을 치닫던 때였다. 인건비 부담이 커지자 근근이 연명하던 남부 기업들 상당수가 사업 규모를 줄이거나 문을 닫았고, 흑인들의 저임금 일자리가 대거 증발했다. 흑인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제도는 축복이 아니라 날벼락이었다.

2018년, 문재인 정권 치하의 대한민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노동약자 보호’를 내세워 최저임금을 한꺼번에 16.4% 올리자 영세 일자리가 직격탄을 맞았다. 힘겹게 사업을 이어가던 편의점 PC방 노래방 등 영세상점 점주들의 아르바이트 직원 해고가 줄을 이었다. 아파트들도 인건비가 치솟은 경비원을 해고하고 무인 경비 시스템을 도입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당시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지휘한 청와대의 장하성 정책실장이 살던 서울 송파구 대형 아파트도 경비원들을 해고했다.

문재인 정권이 출범하기 무섭게 최저임금부터 다락같이 올린 배후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이 있었다. 대통령선거에서 문재인 후보를 공개 지지한 민노총은 정부 출범 이후 온갖 청구서를 내밀어 과실을 잔뜩 따먹었다. 그 대표 격인 최저임금 대폭 인상 요구에 ‘불평등·양극화 해소’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시커먼 속셈이 따로 있었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그에 따라서 나머지 임금도 연쇄적으로 올라가게 된다는 게 그것이다.

민노총 조합원들의 사업장은 경영이 탄탄한 대기업과 금융회사, ‘철밥통’이 보장된 공기업이 대부분이다. 임금을 많이 올린다고 해서 당장 문 닫을 걱정이 없는 곳이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힘없는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을 먹잇감 삼아 민노총 조합원들의 배만 더 불리는 결과를 낳았다. 2018년 한 해 동안 일자리 55만 개(2.7%)가 사라진 반면 대기업·금융회사·공기업 임직원들은 급여가 두둑해진 게 그 증거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통해 해소하겠다던 ‘불평등·양극화’가 오히려 더 심해졌는데도 정부와 민노총은 입을 닫았다. 지금이라도 실상을 제대로 짚어내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

최저임금제도를 먼저 도입한 미국과 일본은 이런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지역·업종별로 최저임금을 다르게 적용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는 연령별로도 차등화했다. 제도의 본래 취지를 살려 노동약자가 억울한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시행착오의 산물이다. 한국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최저임금 차등화 필요성이 제기된 지 오래지만 민노총의 철벽 반대에 막혀 있다. 특정 지역이나 업종에 ‘저임금지대’라는 낙인이 찍힐 것이라는 게 반대 이유다. 뒤집어 말하면 민노총 사업장이 최고 수준 급여를 받는 ‘고임금지대’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걸 막겠다는 자백이다. 미국, 일본과 유럽 국가 노조들이 민노총보다 몰인정하고 판단을 잘 못해서 최저임금 차등화를 받아들인 게 아니다.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에게 지켜야 할 최소한의 염치는 있어서다.

그런 민노총이 내년 최저임금을 5% 더 올리기로 한 최근 발표를 놓고 “실질임금 하락이자 임금 후퇴로 불평등·양극화 심화를 불러올 것”이라며 지난 주말 대규모 도심시위를 벌였다. 이달 중순 금속노조 20만 명 파업과 8·15 전국노동자대회를 강행하겠다는 예고도 했다. 속이 뻔히 보이는 ‘귀족 밥그릇 타령’을 부끄러운 줄 모른 채 늘어놓는 모습에서 이들의 운명이 다해가고 있음을 본다. 일본 경제가 승승장구하던 시절 ‘춘투’를 일삼으며 과실 빼먹기에 여념 없던 일본 노조가 그랬다. 숙주(宿主)로 삼던 사회당과 함께 세상 변화에 눈감은 결과는 ‘동반 몰락’이었다. 민노총은 다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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